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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

나의 다짐(《기후변화와 자본주의》 옮긴이 후기)

2011년에 제가 연구보다는 기후 정의 운동에 더 투신하기를 다짐하면서 썼던 글입니다. 《기후변화와 자본주의》 첫 출간 당시의 옮긴이 후기입니다. 관련 내용은 셋째 문단부터입니다.
 

처음 이 책을 소개받을 때 들은 말은 "매우 쉬운 말로 쓴 책"이라는 것이었다. 실제로 읽어 보니까 중학교 교과서를 놓은 지 20년이 지난 노동자도 읽고 이해할 수 있겠다고 느꼈다. 그래서 만약 독자가 이 책을 읽다가 난해하다고 생각되는 대목이 있다면 그것은 전적으로 번역자인 나의 책임이다.
또한 이 책은, 쓸데없이 온갖 기술적 세부 사항들을 늘어놓으며 이것저것 다 고려해야 한다면서 양비론이나 비관론을 강요하는 책이 아니다. 그런 젠체하는 지식인들을 비웃기라도 하듯 칼로 무 썰듯이 분명하고 단하호게, 그것도 SF 영화에나 나올 법한 미래 기술들이 아니라 이미 시중에 나와 있는 기술만으로 지구를 살릴 수 있다고 명쾌하게 입증하는 부러운 능력을 조너선 닐을 보여 준다. 그리고 노동자의 의식이 변하지 않아서 문제라는 식의 비관론에 대해서도, '하면 된다'는 식으로 무조건적 의욕만을 강요하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그들을 움직이게 만들 수 있는 정치적 해법까지 제시한다.
끝으로, 비록 이 책의 주요 독자층은 아니겠지만, 나 같은 과학도들과 선배 연구자들에게 올리고 싶은 말씀이 있다. 나는 이 책의 많은 분량을 국내외 최상의 과학자들과 측정 장비들이 모이는 단기집중관측(IOP) 출장과 외국 국제학회 출장 중에 번역했는데, 출장지에선 서류 업무로부터 상대적으로 자유롭기 때문에 개인 시간이 많다는 단순한 이유 때문이었다. 그러나 밤에 숙소에 돌아와서 이 책 앞에 앉으면, 낮에 다른 연구자들과 만나 나눈 대화가 비록 흥미롭기는 했지만 '그래서 우리의 연구가 기후변화를 막을 수 있을까?' 하고 자문해 보면 자신이 없었다.
기후변화를 막으려면 물론 과학 연구도 필요하다. 그렇지만 지금 가장 필요한 것은 과학보다는 제대로 된 정치라는 것이 이 책의 결론이다. 조너선 닐만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 아니다. 이미 많은 과학자들이 깨닫고 있다. 기후변화에 관한 학술 행사 가운데 세계 최대 규모를 자랑하는 미국지구물리학회(AGU) 정기대회에서 매년 정치와 정책에 관한 세션이 열리고 과학자들 사이에 열띤 토론이 오가는 것도 그 때문이다.
그러나 과학자 커뮤니티 밖으로 조금만 나가면, 연구 논문도 변변치 않은 회의론자들과, 최근엔 환경경제학자들까지 가세해서 기후변화는 너무나도 복잡하고 큰 일이라 지금 당장은 사실상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는 낭설(浪說)을 퍼뜨리고 있다. 이 책이 말하는 것처럼 진실은 복잡하지 않고 우리가 나아가야 할 길은 분명하다는 주장에 더 많은 연구자들이 동참하기를 호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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