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 정의 운동은 "기후 변화가 아닌 체제 변화"라고 오랫동안 강조해 왔습니다.
화석연료 중독을 끊으려면 체제 자체를 반대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체제의 한 플레이어를 지지하는 방식으로는 부분적 흐름만 바뀔 뿐 체제 자체는 건드리지 못합니다.
그런데 화석연료 체제는 전쟁을 낳는 체제이기도 합니다.
그런 점에서 국제적으로 저명한 여러 환경단체들과 한국의 기후위기비상행동이 Stand With Ukraine의 입장에 연명한 것은 올바르다고 보기 어렵습니다.
Stand With Ukraine의 성명은 러시아를 "이번 전쟁의 유일하고 명백한 호전 세력"이라고 규정하면서 "모든 비폭력 수단을 동원해서" 러시아를 막을 것을 "유럽연합, 미국, 캐나다, 중국, 인도, 일본, 한국 등 러시아산 석유와 가스를 수입하는 모든 국가"의 "정치적 대표"들에게 촉구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러시아만을 호전 세력이라고 본 것이 옳지 못합니다. 러시아뿐 아니라 서방도 이번 전쟁의 당사자입니다. 수십 년 동안 미국과 유럽연합이 군사 동맹체인 나토와 그것의 경제적 자매기관인 유럽연합을 확장해 온 것이 이번 전쟁의 발단입니다.
또한 Stand With Ukrain은 열거한 국가들의 정치적 대표, 즉 지배자들에게 개입을 촉구하고 있는데 이것도 현명치 못합니다. 익히 알다시피, 저 지배자들은 지난해 COP26에서 석탄 보조금을 몇 년 더 유지하기로 합의하고 "블라블라" 말잔치만 벌였던 자들입니다.
이처럼 화석연료 문제에서는 사실상 한통속이었던 자들이 전쟁 문제에서는 달리 행동하리라고 기대할 수 있을까요? 불행히도 아닙니다. 푸틴이 유럽의 화석연료 의존을 인질로 여기고서 전쟁을 벌였다면, 미국 등 서방은 러시아산 화석연료를 다른 방식으로 벌충하고 이 참에 화석연료 시장 내 러시아 지분을 자신들이 차지하려 합니다. 그것이 체제의 논리입니다.
실제로, 미국은 전쟁 발발하기 전부터 일본과 한국에게 중동산 천연가스 계약 분을 일부 유럽에 양보하는 방식으로 협조하라고 요청했습니다.
세계적으로는 셰일가스 채굴이 다시금 탄력을 받고 있습니다. 상대적 고유가로 이미 빠르게 늘고 있었는데 전쟁으로 유가가 더 치솟자 셰일가스 기업들은 지금 아주 신났습니다.
무엇보다, 미국 등 서방 지배자들도 결코 화석연료를 줄이고 있지 않습니다. 바이든은 당초 적어도 공공부지에서는 석유와 가스 개발을 중단시키겠다고 공약했지만, 이마저도 제대로 지켜지지 않고 있습니다. 오히려 최근 한 단체가 조사한 바에 따르면 2021년 1월 말 바이든 집권 후 공공부지에서 석유와 가스 개발 승인 건수는 되레 트럼프 정부(2017.2~2021.1) 대부분의 시기보다도 더 많다고 합니다. 고유가를 맞아 재생에너지에 박차를 가하기보다는 미국 화석연료 기업들을 위해 발벗고 나서고 있는 것입니다.
물론 Stand With Ukraine은 러시아 석유와 가스 보이콧이 우선적이라는 말과 함께 화석연료 확장 중단도 언급은 합니다. 하지만 전체적 강조점이 러시아에 맞서 서방 강대국의 개입을 촉구하는 탓에 이 점은 잘 부각되지도 않을 뿐 아니라, 서방의 이런 행태에 대해서는 언급이 전무합니다.
무엇보다 현실의 냉혹한 논리 앞에서는 힘을 전혀 발휘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화석연료 중단이라는 말이 공문구에 그치지 않고 실제 힘을 발휘하려면, 러시아와 서방 모두에 반대하는 운동이 뒷받침돼야 합니다. 하지만 그런 운동을 건설하려면 러시아와 서방 모두에 반대하고, 무엇보다 전쟁을 낳는 이 체제에 반대한다는 것을 분명하게 밝히는 것에서 출발해야 합니다.
저도 우크라이나의 평화를 진심으로 기원하고 러시아가 하루 빨리 철군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러기 위해서라도 서방과 나토의 제재와 군사적 압박은 즉각 중단돼야 합니다.
"기후 변화가 아니라 체제 변화"라는 구호의 진정한 의미를 그 어느 때보다도 곱씹어 봐야 할 때입니다.
*3월 15일 정정 사항: 그레타 툰베리나 그녀가 이끄는 '미래를 위한 금요일'은 연명하지 않았다고 한 분이 지적해 주셨습니다. 동일한 해시태그를 사용한 것만 보고 제가 그만 혼동했네요.
출처:
- 일본, 우크라 분쟁때 유럽에 LNG 보낸다…한국도 미국 요청받아 https://www.hani.co.kr/arti/international/japan/1030379.html
- 다시 뜨는 셰일… 1년반새 굴착기 2.6배로 늘어 https://www.chosun.com/economy/industry-company/2022/03/10/AQ2MRD4LKZAXXPADQ2R7CUBQIA/
- 바이든의 공공부지 화석연료 개발 승인 건수 비교 자료 https://www.citizen.org/article/bidens-oil-letdown/
Biden’s Oil Letdown
Despite pledge to stop drilling on public lands, Trump-era drilling boom continues under Biden
www.citizen.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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