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봄 들어 전국적으로 벌들이 사라졌다는 뉴스를 봤습니다. 양봉농가의 피해가 주되게 보도됐고 저도 피해를 입으신 분들이 모쪼록 충분히 지원받기를 바랍니다. 하지만 벌의 실종은 양봉농가뿐 아니라 훨씬 큰 생태계 문제로 이어지기 십상입니다.
왜냐하면 벌 등을 통해서 식물의 수분이 이뤄지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2월 말에 발표된 ‘기후변화 영향, 적응, 취약성’에 관한 IPCC 2차 실무그룹 보고서는 벌과 같은 동물(pollinator, 꽃가루 매개자)을 생물다양성 문제(2장)과 식량 문제(5장)를 다루면서 언급합니다.
그에 따르면, 기후 위기의 다른 변화 없이 벌 등의 매개자 동물이 사라지는 것만으로도 세계적으로 과일 생산량은 23퍼센트, 채소는 16퍼센트, 견과류는 22퍼센트 줄 것이라고 합니다. 오늘날 농업은 현대적 기술을 자랑하지만 여전히 생태계에 크게 기대고 있는 것이고 벌의 멸종이 인류의 멸종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경고까지 나오는 까닭입니다.
문제는, 벌과 같은 꽃가루매개자는 양서류 등과 함께 지구온난화에 가장 취약한 생물군 중 하나라는 것입니다. 다음은 IPCC 보고서에 인용된 〈네이처 플랜츠〉논문에서 가져온 그림입니다. (이 도표는 유럽의 벌과 나비를 대상으로 한 것이지만 다른 지역에도 그 메시지는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지구온난화가 심해질수록(도표에서 아래로 내려올수록) 녹색의 비중이 작아지는데 그만큼 벌과 나비가 많이 희생된다는 것입니다.
도표 좌우의 차이는 벌과 나비가 서식지를 자유롭게 이주할 수 있는 경우와 그렇지 못한 경우를 대조한 것으로, 이주가 제한될 경우 그 피해가 훨씬 더 심각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기후변화로 개화 시기나 벌의 생리주기가 변하면서 서로 타이밍이 맞지 않는 문제가 발생하는데, 벌과 나비는 기본적으로 서식지를 옮기는 방식으로 적응하려 합니다. 그래서 이주가 허용되지 않으면 피해가 훨씬 더 커지는 것이죠.
IPCC 보고서에 인용된 또 다른 연구에서는 지구온난화를 1.5도로 제한하더라도 전체 동식물의 9퍼센트가 멸종할 것이라고 전망하는데 이는 자연적 멸종률보다 여전히 1천 배나 큰 것이라고 합니다. 그야말로 어마무시하죠.
더욱 안타까운 것은, 자본주의적 농업 탓에 벌은 이미 크게 줄고 있다는 것입니다. 전통적인 농업에서는 여러 작물을 섞어서 재배하는 것이 흔했지만 농업이 산업화하면서 단일 작물 경작이 대세가 됐습니다. 이런 단일 재배는 생태계 다양성을 해치는데, 생태계가 단순해질수록 복원력은 떨어집니다. 그 탓에 농업 방식의 작은 변화(새 농약 도입, 서식지 파괴)에도 벌은 취약성이 커져서 개체 수가 크게 줄고 있습니다.
그리고 단순히 벌을 인위적으로 많이 길러 내서 농업에 ‘공급’하는 것은 제대로 된 대안이 아닙니다. 실제로 IPCC 보고서도 “벌의 총 개체수가 많은 것보다, 그 종류가 다양한 것이 성공적인 수분을 위한 핵심 요소로 꼽힌다”고 명시적으로 밝혔습니다.
따라서 벌이 사라지는 것을 막으려면 온실가스 배출을 막아 지구온난화를 늦춰야 할 뿐 아니라, 생태계보다 이윤을 우선시하는 자본주의적 농업을 타파해야 합니다. 그럴 때에만 벌 등의 동식물이 제한된 서식지 안에 갇혀 멸종하는 것을 막고, 다양한 생물다양성을 발전시키고 또 인간과 벌 모두의 공존을 바랄 수 있을 것입니다.
자료 출처
- 벌과 나비 도표 출처: Climate change impacts on pollination, Settele et al., 2016. Nat Plants, 2(7), 16092, doi:10.1038/nplants.2016.92.
- 자본주의 농업과 벌 문제에 관해서는, Food, agriculture and climate change, Empson, 2016. 이 논문은 책 《기후 위기, 불평등, 재앙》에 번역돼 실려 있습니다.
'기후 위기 정보와 소식' 카테고리의 다른 글
엘리베이터 교체 현수막과 낭비 자본주의 (0) | 2022.05.06 |
---|---|
KB금융, 글로벌 기후악당 금융사 47위로 지목돼 (0) | 2022.04.04 |
화석연료 줄이려면, 러시아 제재가 아니라 체제 변화를 주장해야 합니다 #2 (0) | 2022.03.22 |
화석연료 줄이려면, 러시아 제재가 아니라 체제 변화를 주장해야 합니다 (1) | 2022.03.13 |
호주의 기록적 홍수가 기후 운동에 주는 메시지 (0) | 2022.03.0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