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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 위기 정보와 소식

화석연료 줄이려면, 러시아 제재가 아니라 체제 변화를 주장해야 합니다 #2

우크라이나 전쟁을 계기로 전쟁에 반대하고 화석연료 사용을 줄이자는 논의가 활발합니다.

 

모든 쟁점에서 화석연료를 줄일 방안을 모색하는 것은 분명 필요한 일입니다. 하지만 전쟁을 낳는 체제 자체를 반대하지 않고 러시아의 화석연료만 반대하는 것은, 선한 의도와 다르게 전쟁을 격화하고 화석연료 사용량도 늘릴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지금 각국은 대대적인 군사력 강화를 추진하고 있고 이는 화석연료 대폭 증가로 이어질 공산이 크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최근 독일 정부는 이번에 러시아 규탄 여론에 기대 1000억 유로어치의 재무장 계획을 발표했습니다. 그동안 독일은 양차 대전을 일으킨 과거와 그에 대한 주변국 우려 때문에 군사력에는 투자를 상대적으로 덜 했는데, 180도 전환에 나선 것입니다.

 

따라서 전쟁과 화석연료 사용을 줄이려면 서방과 러시아 모두에서 전쟁과 군사력 증강 시도에 반대해야 합니다. 군대는 전쟁 중이 아닐 때에도 화석연료를 엄청나게 사용합니다. 이번 포스트에서는 주되게 미군을 살피겠지만(다른 나라보다 압도적으로 크기도 하고, 자료가 가장 잘 정리돼 있기 때문입니다) 러시아나 다른 나라의 군대들도 화석연료를 펑펑 쓴다는 점에서는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다음은 미국 국방부가 한 해에 사용하는 에너지를 기초로 브라운대학교 연구진들이 온실가스 배출량을 추산한 것입니다.(미군의 핵함공모함이 사용하는 에너지는 제외된 수치입니다.)

 

이에 따르면 2017년 기준으로 미 국방부의 온실가스 배출량(5900만 톤)은 스웨덴(5100만), 핀란드(4700만), 덴마크(3400만)의 각각 나라 전체 배출량보다 많고, 미국의 철강 산업의 전체 배출량보다도 많다고 추산했습니다. 단일 기관으로는 단연 세계 최대입니다.

 

아래 그림은 이를 부문별로 나눈 것인데 어두운 청색은 국방부, 밝은 청색은 국방부를 제외한 정부 기관(civilian)의 에너지 소비량입니다. 또 왼편은 차량과 장비 운용, 오른편은 각종 시설 운용에 쓰인 에너지입니다. 국방부의 에너지 소비량이 여타 정부 기관보다 훨씬 더 많고, 무엇보다 제트 연료로 인한 배출이 엄청나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아래 그림은 2016년 미 국방부의 에너지 사용량을 다른 방식으로 나눈 것입니다. 왼쪽을 보면 화석연료 상당 부분은 수송기(airlift), 전투기(fighter), 공중급유기(tanker)가 절반 이상을 차지합니다. 또 오른쪽을 보,면 이번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나토와 긴밀히 협조하고 있을 미군 유럽사령부(EUCOM)가 14퍼센트를 차지한다고 합니다.

여기에 핵항모 운용을 위한 핵물질의 추출, 가공, 농축을 위해 쓰이는 에너지까지 포함하면 더 커질 것입니다.

서두에 말씀드렸던 독일 등의 재무장이 더욱 문제인 이유는, 이전부터 군비는 세계적으로 빠르게 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특히 한국을 비롯한 동아시아와, 중동에서 군비가 빠르게 늘고 있었는데 여기에 이제는 유럽까지 가세하는 형국입니다. 이런 맥락을 봤을 때, 전쟁 위기를 꾸준히 키우고 있는 체제 전체에 반대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무기 구입에 지출된 돈이, 재생에너지나 노동자들을 위한 정의로운 전환에 쓰일 비용을 희생해서 마련된다는 점도 중요합니다. 한 연구에 따르면, 지난 20년 동안 미국이 군사비에 지출한 금액이 6.4조 달러인데, 이는 미국 전체 전력망을 100퍼센트 재생에너지로 전환시키는 데 필요한 비용(4.5조 달러)을 훌쩍 웃도는 비용이었습니다.

 

따라서 환경 운동은 이처럼 에너지와 돈을 흥청망청 낭비하는 전쟁에 모두 반대하는 입장을 취해야 합니다. 반대로 비행금지구역 선포 등으로 우크라이나 전쟁이 확전된다면, 현지의 우크라이나인들이 가장 큰 피해를 입을 뿐 아니라 지구 생태계 전체에도 해악적일 것입니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에서 즉각 철군한 것을 요구할 뿐 아니라, 러시아의 침공을 빌미 삼으려는 서방 국가들의 군사력 강화 시도와 이를 위한 포석인 러시아 제재에 대해서도 분명하게 반대해야 합니다.

 

독일에서는 과거 전쟁 반대로 성장해 온 녹색당이 재무장 선언을 지지하고 나섰습니다. 지난 총선에서 녹색당이 공약했던 기후 위기 대응에 비춰 보더라도 엄청난 퇴보입니다. 다행히도 독일에서는 수십만 명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과 독일의 재무장에 모두 반대하면서 시위에 나섰다고 합니다.

 

세계 모든 나라에서 반전 운동과 환경 운동은 서방과 러시아 중 한쪽 지배자들에게 이용당하는 것이 아니라 체제 자체를 겨냥해야 합니다.

 

자료 출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