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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논쟁] 에너지 요금 인상과 기후 정의 운동

전기•가스 요금 인상 반대를 둘러싸고 기후운동 내 논쟁이 계속되고 있다. 기후정의동맹과 그들이 주축이 된 '4.14기후정의파업'이 요금 인상 철회 요구를 공식화하자, 요금 인상 필요성을 오랫동안 주장해 온 정의당 이헌석씨가 반박하고 나선 것이다.

나는 요금인상 철회는 물론이고 요금 인하까지도 요구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 관점에서 이헌석 씨를 주되게 반박하겠다. 그 다음에는 414기후정의파업 측도 (적어도 그 주요 조직자 한재각 씨는) 가격 인상에 반대하는 논리에 꽤 큰 허점이 있고, 그래서 겉보기와는 달리 이헌석씨와 불길한 공통점을 갖고 있다고 지적하겠다.
(두 분의 글 링크는 하단에 있다.)

이헌석씨가 제시하는 각종 수치들은 모두 전력 원가 산정과 그에 따라 가정용/산업용 요금의 적정 여부를 판단하기 위한 것이다. 원가보다 싸게 공급하는 만큼 어느 정도 비용 인상을 감수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세상엔 원가보다 싸도 여전히 비싼 게 많다.(예컨대, 병원비, 보육비, 학비 등) 그렇지만 이헌석씨의 글에선 최근의 물가인상과 경제 위기 시기에 에너지 비용이 가계에 얼마나 부담이 되는지에 대한 통계는 하나도 찾아볼 수 없다.

이헌석씨는 또한 정부의 가격 인상 이유는 에너지 수요 감소가 아니라 공기업 적자이고 이 둘을 섞는 것은 잘못이라고 항변한다. 그러나 이런 항변은 전혀 사실이 아니다. 얼마 전 국무총리 한덕수는 "에너지 가격이 갖는 의미는 수요 전략의 하나이기 때문에 그런 원칙을 갖고 운영을 할 수밖에 없다"며 둘의 연관성을 분명하게 밝혔다.(첨부사진2) 심지어 그 자리는 대중적 반발에 떠밀려 가스비 인상 속도 조절을 마지못해 얘기하는 자리였는데도 그는 "공공요금을 올려야 할 요인들이 있는 게 현실이고 또 그렇게 올려서라도 에너지 소비를 줄이는 것도 기본적 원칙으로 필요하다"고 말해, 에너지 소비 줄이기를 요금 인상 명분으로 앞으로도 삼을 것임을 드러냈다.

또 이헌석씨는 누진제 중 최하위 구간만 요금을 낮추고 나머지는 올리면 원가회수율을 낮추지 않을 수 있는데 왜 굳이 요금 인하를 불필요하게 주장하냐고 반문한다.

여기에는 두 가지 문제가 있다. 첫째, 평범한 사람들 다수가 "최하위"만 쓰지 않는다는 것이다. 지금 난방비 폭탄, 여름에 전기요금 폭탄을 맞는 이들은 글자 그대로 "평범한 사람들"이다. 단열 잘 되는 신식 주택에 살지 못하거나, 오래된 구식 저효율 에어컨/보일러에 기대고 있거나, 일자리를 못 구했거나 집에서 아동이나 환자를 돌봐야 해서 하루종일 자비로 냉난방을 해야 하는 등등.

둘째, 기후위기 대응과 적응을 위해선 가정용 에너지 부담을 줄여야 한다. 정부가 혹한과 폭염, 코로나 같은 보건 위기, 태풍홍수가뭄 같은 재해에서 사회 구성원들을 안전하게 지키기 어려워질수록 개인들끼리 도우며 대응해야 할 일이 많아질 것이고 모든 단계에서 에너지(산업용도 공공도 아닌 가정용일 것이다)가 쓰일 것이다. 가정용 에너지 사용량을 "최하위"로 억제하면서 그런 변화나 적응을 기대할 수 없다.
이처럼 꼭 필요한 에너지 소비가 이윤 생산을 위한 에너지 소비와 구별되지 않는 것이 (원가회수율 같은) 시장 논리의 문제다. 결국 관건은 소비량이 아니라 그 목적•용도이다.

문제는 414기후정의파업 측도 후자의 문제에서는 약점을 보인다는 것이다. 한재각 씨는 현재의 시장 위주 제도(탄소 가격 제도)에서는 에너지 비용 부담이 기업에게만 유리할 공산이 크다고 옳게 비판하고, 산업용 전기요금부터 "징벌적으로", 그리고 과감하게 인상하자고 주장하는데, 그 대목에서 나는 전적으로 동의한다.
문제는 이런 그도 "중산층"의 전기사용 중 일부는 줄여야 한다는 인식을 공유한다는 것이다. 한국은 세계적으로 부유한 축에 속하니까 한국인 "중산층"은 에너지 소비량을 좀 줄일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이 주장은 앞서 소개한 그의 옳은 비판을 통째로 허물 위험이 있다.

첫째, 한국인들의 현재 가정용 전기, 가스, 물 소비량은 결코 낭비적 수준이 아니다. (첨부사진4. 이헌석씨가 오랫동안 활동하신 에너지정의행동 자료인 건 아이러니.)
물론 지금 대지진으로 시달리는 튀르키예나 시리아 같은 나라들보다는 소비량이 클 것이다. 그러나 그런 나라 평범한 사람들의 소비량을 끌어올려야 할 문제이지 거꾸로가 아니다. 기후위기 대응은 에너지를 요구하고 그건 물리적 법칙이다!
관건은 소비량이 아니라 소비의 *질적 측면* 즉 용도와 목적에 따라 태도를 달리해야 한다는 것이다. 시장 논리는 질적 차이를 삭제해 버린다고 비판해 놓고 다시금 중산층의 소비량은 문제 있다고 하는 것은 일관되지 못한 것이다.

둘째, "중산층"이라는 단어만큼 그 범위가 모호한 용어도 없고 동상이몽을 낳기 십상이다. 연봉 5천은 중산층인가? 7천은? 열두달 특근 빠듯하게 수십 년 일해 어쩌면 그보다 연봉이 더 높은 생산직 노동자는?(이들도 대출 없이는 집이 없는 경우가 많다.)
에너지 소비량이라는 양적인 잣대로 적정성을 따지지 말아야 하는 것처럼, 소득의 금액을 "필수적"의 잣대로 삼아선 안된다. 석탄 발전소 노동자들에게 석탄 발전소의 온실가스 배출 책임을 물을 수 없다는 것은 오늘날 기후 정의 운동 진영의 핵심 메시지 중 하나다. 왜냐하면 그 노동자들에게는 발전소 건설/가동/폐쇄에 대한 발언권이 없었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개인의 에너지 소비 방식을 압도적으로 규정하는 집, 도시, 나라의 각종 특징에도 발언권이 없기는 마찬가지이다. 부동산 걱정, 출퇴근 걱정 없이 외딴 곳에 자기 돈으로 패시브하우스 짓고 사는 사람이 아닌 이상 말이다.

그런 점에서 414기후정의파업 측이 "가정용 요금인상 철회"에서 "필수적 요금 인상 철회"로 용어를 바꾼 것은 우려스럽다. 가정용이라는 비교적 경계가 분명한 기준에서 혹시 후퇴하는 것일까 싶기 때문이다. 한재각 씨의 해설을 읽고 나서는 더욱 그렇다.

이헌석씨가 자신의 반론 첫 머리에서 이를 지적하고, 그의 여러 주장 중 3번('"필수적인" 에너지 사용만 생각하면 누진제 구간별로 요금 인상/인하 폭을 달리하면 되는데 왜 굳이 인하를 강조하느냐')만큼은 414기후정의파업 측의 허점을 제대로 노리고 있다고 보인다.

시장 논리에서 벗어나 에너지 공공성을 확충해야 한다는 지향점을 흔들림없이 고수하려면 '한국 중산층의 에너지 사용은 좀 문제다'이라는 (또는 그렇게 해석될 여지가 농후한) 모호한 정식을 떨쳐야 한다.

 

 


원래 제 페이스북에 쓴 글인데 길이 때문에 인스타그램에 직접 올릴 수 없어서 이곳을 경유해서 공유합니다.